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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귀신영화 찍자고 올지도 모를일 아닌가?
- 작성일
- 2019.06.23 11:31
- 등록자
- 안OO
- 조회수
- 1069
1.연천 전곡리 유적지에 세워진 구석기자연사 박물관/박물관과 계절축제로 지역경제활성화및 남북접경지역의 한계 탈피에 큰 기여
문화관광체육부 우수축제이며, 가족중심형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널리 알려진 구석기축제가 매년 열리는 사적 제268호 ‘전곡리선사유적지’ 명칭이 ‘연천 전곡리 유적’으로 변경됐다.
전곡선사박물관은 2004년 문화재청에서 전곡리 선사유적지 종합정비기본계획 승인 후 이듬해인 2005년 도립박물관 건립 방침 결정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국제현상공모를 통한 설계 과정과 건축 시공, 전시 연출을 통해 7년만인 2011년 4월 25일 개막식과 함께 문을 열고 다양한 축제시행으로 경기도 대표축제로 발돋움하였고 대한민국대표축제로 승격을 기다리고 있다.
연천리 구석기 축제는 지난 1993년 유적관 개관을 계기로 시작 되어 올해로 19회째 맞은 전통 있는 ‘어린이 선사체험’ 축제다.
이 축제는 주로 어린이와 가족을 대상으로 석기제작-사용, 석기복원, 석기 그리기, 석기 모형 만들기, 움집 제작 등을 통해 구석기 문화와 원시적 체험을 프로그램화 하고, 꼬마돼지잡기(수렵체험), 창던지기(수렵체험), 불 피우기, 구석기바베큐,우리가족 벽화그리기 등 구석기 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어린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동아시아 최초의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발견으로 세계 구석기 연구의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던 역사적 현장인 전곡리 구석기유적발굴 현장에 건립된 유적박물관이다. 전곡리 구석기유적지에서 출토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등의 구석기 유물들을 중심으로 인류의 진화와 전기구석기시대 문화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주제의 유물들로 전시공간을 구성하였다.
2.공주 석장리 유적박물관<1990년 10월 3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334호로 지정>
한국역사의 시원은 선사시대의 시대별 분류 중 대개 유라시아에 대하여 사용되는 시대 개념인 중석기시대로부터 시작 된다. 이 시대 인류의 생활 특징은 수렵, 어로, 채취 등 획득경제에 의존하여 생활하게 되는데, 주로 강가를 중심으로 그 생활무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와 같은 중석기시대의 유적은 우리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공주석장리의 선사유적이다.
1지구바둑판식 발굴구덩(1969년)
구석기시대의 생활은 주로 채집과 수렵에 의존하였다. 특히,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집단적인 협동이 필요했을 것이고, 따라서, 일정 규모의 공동체 생활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사실은 석장리의 집자리유적이 8~10명 정도의 인원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점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유적의 존재는 1964년 5월 홍수에 의해 강둑이 무너짐으로써 확인되었으며,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는 1964년 11월 22일에 처음 이루어진 이후 1974년까지 10년간에 걸쳐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1990년과 1992년에 11,12차 조사가 추가로 실시되었다. 그 결과, 불모지와 같았던 우리나라 구석기문화의 체계를 세워 놓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를 구석기시대까지 올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석장리박물관은 석장리유적 출토 석기 및 발굴 연구자료, 세계 구석기 유물 등 약 1만 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전시된 유물 및 자료의 수는 약 800여 점이다. 전시 주제는 구석기시대 인류의 진화, 도구 사용의 의미, 생활사 복원 전시, 석장리 발견과 연구의 의의, 석장리출토 석기, 석장리에서 탄생한 구석기 연구 방법, 어린이를 위한 구석기 전시 등 전체적인 구석기 속에서 석장리를 전달하는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석장리 발굴과 연구에 공헌을 세운 손보기의 연구자료 등을 전시하는 기념관이 있으며 매년 1회 세계적인 구석기 유물을 선보이는 독특한 특별전을 개최해 주목을 받고 있다.
한반도의 가장 오랜 사람들을 세상에 증명한 석장리유적에 건립된 박물관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유적지 보호, 보존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구석기 전시와 교육, 체험행사를 개최해 석장리와 한국 구석기를 널리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공주석장리 유적발굴지에 2006 9 26 석장리 박물관이란 이름으로 개장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주석장리 구석기축제 엄지척
김정섭 공주시장은 “석장리구석기축제는 내실을 강화하고 효율적으로 발전시켜 내년 개최되는 세계구석기축제에 잘 대비해야 하며
석장리 구석기는 독보적 유적으로 가치가 입증된 만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특색 있는 역사문화축제로 만들어 나갈 것을 천명했다.
3.장흥장동 신북구석기유적<전남도 기념물 제238호>
2019 AGAIN 신북유적 사적지화 추진및 박물관건립, 축제시행<신북유적 보존회>
지난 2004년 장흥장동면 북교리 일대에서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만큼 귀중한 사료인 구석기 후기 유적이 대거 발굴됐다.
이 구석기 유적은 조선대학교 박물관(관장 이기길교수)이 1년여 만에 발굴한 2만2천년 전의 후기 구석기 유적으로, 3만여 점의 갖가지 유물이 출토돼 국내 구석기 유적으로는 가장 규모가 큰 4만여 평으로 추정되었다.
이 유적에 대해 국내는 물론 세계 관련 학자들은, 그 동안 신석기 시대에 널리 쓰인 것으로 알려진 간석기가 한반도의 신북유적에서 확인, 후기 구석기 시대 한반도 전역에서 마제기법이 아주 다양하게 쓰인 것으로 추정했다.흑요석출토로 일본큐슈지역과 백두산인근까지 교류했음을 확인할수 있다.
<타제구석기,마제 신석기란 정설을 뒤엎어 전세계 교과서를 다시 써야할 정도의 후기구석기 대한민국대표유적>
또 학계에서는 신북 구석기 유적은 후기 구석기 시대의 생활상과 문화상을 잘 보여줄 뿐 아니라, 우리나라 후기 구석기유적 중 가장 크고 유물 밀집도도 높은 유적으로 그리고 일본, 중국, 시베리아 등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후기 구석기 문화와의 연관성을 풀 수 있는 귀중한 유적으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했다.
15년 동안 전시할 박물관이 없어 서울 중앙박물관에 여러점 전시중이고 나머지는 조선대박물관 지하에 보관중이다.하루라도 빨리 가져와서 장흥군 역사문화관광의 대표컨텐츠로 발전 시켜 나가야 한다.
안중근의사 사당 성역화,신북구석기 박물관건립및 4계절축제시행,육상의 이순신 정경달장군을 묶어낸다면 장흥군의 위상도 오르고
특히 가장 낙후되고 소외된 그래서 귀신이 출몰할것 같은 장동및 북부지역 경제활성화및 성장동력으로 자리할 것으로 자신한다. 또한 안의사사당 성역화의 일환으로 안의사님 하얼빈의거현장 ,안의사님 뤼순감옥및 일제관동도독부 법정<일제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여순을 점령한 후 1906년 9월 이곳에 관동도독부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을 설치>, 청계동마을및 성당을 재현하는 공간을 마련한다면 전세계에 장흥을 알리고 안중근의사의 평화사상도 번져 나갈것이다.또한 기시노브스께<1급전범>의 외손자인 아베의 군국주의화에 제동을 걸고 평화애호국으로 끌어낼지도 모를 일이다.참고로 함평에는 독립운동가 김철선생 기념관및 임시정부청사와 안중근의사동상이 세워져 있다.마지막으로 장흥평화 기차역은 정남진 하얼빈역으로 命名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장동의 기차역 이름은 不滅의 民族魂 "안중근토마스역"을 제안해 본다.
구석기수도 원시자연 장흥/ 신북유적지에서 반민특위 안명규
문화관광체육부 우수축제이며, 가족중심형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널리 알려진 구석기축제가 매년 열리는 사적 제268호 ‘전곡리선사유적지’ 명칭이 ‘연천 전곡리 유적’으로 변경됐다.
전곡선사박물관은 2004년 문화재청에서 전곡리 선사유적지 종합정비기본계획 승인 후 이듬해인 2005년 도립박물관 건립 방침 결정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국제현상공모를 통한 설계 과정과 건축 시공, 전시 연출을 통해 7년만인 2011년 4월 25일 개막식과 함께 문을 열고 다양한 축제시행으로 경기도 대표축제로 발돋움하였고 대한민국대표축제로 승격을 기다리고 있다.
연천리 구석기 축제는 지난 1993년 유적관 개관을 계기로 시작 되어 올해로 19회째 맞은 전통 있는 ‘어린이 선사체험’ 축제다.
이 축제는 주로 어린이와 가족을 대상으로 석기제작-사용, 석기복원, 석기 그리기, 석기 모형 만들기, 움집 제작 등을 통해 구석기 문화와 원시적 체험을 프로그램화 하고, 꼬마돼지잡기(수렵체험), 창던지기(수렵체험), 불 피우기, 구석기바베큐,우리가족 벽화그리기 등 구석기 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어린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동아시아 최초의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발견으로 세계 구석기 연구의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던 역사적 현장인 전곡리 구석기유적발굴 현장에 건립된 유적박물관이다. 전곡리 구석기유적지에서 출토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등의 구석기 유물들을 중심으로 인류의 진화와 전기구석기시대 문화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주제의 유물들로 전시공간을 구성하였다.
2.공주 석장리 유적박물관<1990년 10월 3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334호로 지정>
한국역사의 시원은 선사시대의 시대별 분류 중 대개 유라시아에 대하여 사용되는 시대 개념인 중석기시대로부터 시작 된다. 이 시대 인류의 생활 특징은 수렵, 어로, 채취 등 획득경제에 의존하여 생활하게 되는데, 주로 강가를 중심으로 그 생활무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와 같은 중석기시대의 유적은 우리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공주석장리의 선사유적이다.
1지구바둑판식 발굴구덩(1969년)
구석기시대의 생활은 주로 채집과 수렵에 의존하였다. 특히,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집단적인 협동이 필요했을 것이고, 따라서, 일정 규모의 공동체 생활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사실은 석장리의 집자리유적이 8~10명 정도의 인원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점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유적의 존재는 1964년 5월 홍수에 의해 강둑이 무너짐으로써 확인되었으며,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는 1964년 11월 22일에 처음 이루어진 이후 1974년까지 10년간에 걸쳐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1990년과 1992년에 11,12차 조사가 추가로 실시되었다. 그 결과, 불모지와 같았던 우리나라 구석기문화의 체계를 세워 놓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를 구석기시대까지 올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석장리박물관은 석장리유적 출토 석기 및 발굴 연구자료, 세계 구석기 유물 등 약 1만 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전시된 유물 및 자료의 수는 약 800여 점이다. 전시 주제는 구석기시대 인류의 진화, 도구 사용의 의미, 생활사 복원 전시, 석장리 발견과 연구의 의의, 석장리출토 석기, 석장리에서 탄생한 구석기 연구 방법, 어린이를 위한 구석기 전시 등 전체적인 구석기 속에서 석장리를 전달하는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석장리 발굴과 연구에 공헌을 세운 손보기의 연구자료 등을 전시하는 기념관이 있으며 매년 1회 세계적인 구석기 유물을 선보이는 독특한 특별전을 개최해 주목을 받고 있다.
한반도의 가장 오랜 사람들을 세상에 증명한 석장리유적에 건립된 박물관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유적지 보호, 보존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구석기 전시와 교육, 체험행사를 개최해 석장리와 한국 구석기를 널리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공주석장리 유적발굴지에 2006 9 26 석장리 박물관이란 이름으로 개장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주석장리 구석기축제 엄지척
김정섭 공주시장은 “석장리구석기축제는 내실을 강화하고 효율적으로 발전시켜 내년 개최되는 세계구석기축제에 잘 대비해야 하며
석장리 구석기는 독보적 유적으로 가치가 입증된 만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특색 있는 역사문화축제로 만들어 나갈 것을 천명했다.
3.장흥장동 신북구석기유적<전남도 기념물 제238호>
2019 AGAIN 신북유적 사적지화 추진및 박물관건립, 축제시행<신북유적 보존회>
지난 2004년 장흥장동면 북교리 일대에서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만큼 귀중한 사료인 구석기 후기 유적이 대거 발굴됐다.
이 구석기 유적은 조선대학교 박물관(관장 이기길교수)이 1년여 만에 발굴한 2만2천년 전의 후기 구석기 유적으로, 3만여 점의 갖가지 유물이 출토돼 국내 구석기 유적으로는 가장 규모가 큰 4만여 평으로 추정되었다.
이 유적에 대해 국내는 물론 세계 관련 학자들은, 그 동안 신석기 시대에 널리 쓰인 것으로 알려진 간석기가 한반도의 신북유적에서 확인, 후기 구석기 시대 한반도 전역에서 마제기법이 아주 다양하게 쓰인 것으로 추정했다.흑요석출토로 일본큐슈지역과 백두산인근까지 교류했음을 확인할수 있다.
<타제구석기,마제 신석기란 정설을 뒤엎어 전세계 교과서를 다시 써야할 정도의 후기구석기 대한민국대표유적>
또 학계에서는 신북 구석기 유적은 후기 구석기 시대의 생활상과 문화상을 잘 보여줄 뿐 아니라, 우리나라 후기 구석기유적 중 가장 크고 유물 밀집도도 높은 유적으로 그리고 일본, 중국, 시베리아 등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후기 구석기 문화와의 연관성을 풀 수 있는 귀중한 유적으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했다.
15년 동안 전시할 박물관이 없어 서울 중앙박물관에 여러점 전시중이고 나머지는 조선대박물관 지하에 보관중이다.하루라도 빨리 가져와서 장흥군 역사문화관광의 대표컨텐츠로 발전 시켜 나가야 한다.
안중근의사 사당 성역화,신북구석기 박물관건립및 4계절축제시행,육상의 이순신 정경달장군을 묶어낸다면 장흥군의 위상도 오르고
특히 가장 낙후되고 소외된 그래서 귀신이 출몰할것 같은 장동및 북부지역 경제활성화및 성장동력으로 자리할 것으로 자신한다. 또한 안의사사당 성역화의 일환으로 안의사님 하얼빈의거현장 ,안의사님 뤼순감옥및 일제관동도독부 법정<일제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여순을 점령한 후 1906년 9월 이곳에 관동도독부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을 설치>, 청계동마을및 성당을 재현하는 공간을 마련한다면 전세계에 장흥을 알리고 안중근의사의 평화사상도 번져 나갈것이다.또한 기시노브스께<1급전범>의 외손자인 아베의 군국주의화에 제동을 걸고 평화애호국으로 끌어낼지도 모를 일이다.참고로 함평에는 독립운동가 김철선생 기념관및 임시정부청사와 안중근의사동상이 세워져 있다.마지막으로 장흥평화 기차역은 정남진 하얼빈역으로 命名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장동의 기차역 이름은 不滅의 民族魂 "안중근토마스역"을 제안해 본다.
구석기수도 원시자연 장흥/ 신북유적지에서 반민특위 안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