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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데이?…안중근 의사를 기억하라
- 작성일
- 2019.02.15 17:30
- 등록자
- 안OO
- 조회수
- 1058
110년전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일본 제국의 전 총리이자 제1대 조선통감이었던 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의 재무상 블라디미르 코콥초프(Vladimir Kokovtsov)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 역에 도착했다.
코레아 우라(Корея ура)!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우리말로 "대한민국 만세"라는 뜻이다.
하얼빈 역에 잠입하여 역전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순간 안 의사가 발사한 7.62mm 구경 FN 브라우닝 M-1900 권총탄 7발 중 3발은 이토에게 적중해서 이토를 사살하였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 팔꿈치에 1발,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다이지로 복부에 1발, 남만주 철도 이사인 다나카 세이타로 왼쪽 무릎에 1발을 쏘아 중상을 입히고 외친 말이다. 의거를 마친 안 의사는 현장에서 러시아 헌병들에게 체포됐다. 이후 일본 관헌에게 넘겨져 뤼순의 일본 감옥으로 옮겨졌다.
일본은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로 몰아가려 했다. 그러나 안중근은 대한의군<대장 이범윤> 중장으로서 일본에 맞선 독립 전쟁의 일환으로 이토를 처단한 것이니 자신을 전쟁 포로로 대우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일본이 겉으로는 동양 평화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침략자이며, 이토를 죽인 것은 진정한 동양 평화를 위해서였음을 논리정연하게 주장해 일본 재판부를 당황시켰다.. 다음해 2월 7일부터 14일까지 안 의사는 6번의 재판을 받는다.2월14일 일본법정은 안의사에게 사형을 언도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연한 논리로 법정투쟁을 전개한다.
*이등박문의 15가지 죄
첫째,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둘째, 1905년 11월 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든 죄 셋째. 1907년 정미7조약을 강제로 맺게 한 죄 넷째, 고종황제를 폐위시킨 죄 다섯째, 군대를 해산시킨 죄 여섯째,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죄 일곱째, 한국인의 권리를 박탈한 죄 여덟째, 한국의 교과서를 불태운 죄 아홉째, 한국인들을 신문에 기여하지 못하게 한 죄 열 번째, (제일은행) 은행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열한번째, 한국이 300만파운드의 빚을 지게 한 죄 열두번째,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 열세번째, 한국에 대한 일본의 보호정책을 호도한 죄 열네번째, 일본천황의 아버지인 고메이 천황을 죽인죄 열다섯번째, 일본과 세계를 속인 죄 등이다.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뤼순 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한편 친일매국노들은 1909년 10월 26일에 이토가 사망하자 대련에 이완용을 단장으로 사죄단을 파견하고, 한성에서 이토를 추도하는 모임과 안중근의사 규탄집회를 열었다.
대한제국 순종은 메이지 일왕에게 전보를 보내 위문하고 한국왕실정부대표이등박문조례단(韓國王室政府代表伊藤博文弔禮團)위문사절단 조직에 들어갔다. 순종은 시종원경 윤덕영을, 고종은 승녕부총관 조민희를, 내각은 총리대신 이완용을 위문사절대표로 지명했다. 이들과 함께 통감부 파견원과 한성부민회장 유길준 등이 함께 청나라의 대련으로 파견되었다.
이토의 장례는 11월 4일에 도쿄에서 국장으로 거행되었다. 장례 절차에 대한 공식 발표와 함께 순종은 안중근을 "오(吾)의 흉수"라고 지칭하면서 추도의 뜻을 전보로 보냈고, 곧바로 조문단을 구성해 장례식에 참여하도록 했다. 조례단 대표는 고종의 특사 박제빈, 순종의 칙사 민병석, 의민태자의 어머니인 순헌황귀비의 조문사 엄주익, 내각 대표 조중응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수행원들과 함께 10월 30일에 서울을 떠나 장례식에 참석한 뒤 11월 7일에 돌아왔다."이게나라냐"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망할수밖에 없는 나라였다.
110년 지난 지금도 기시노부스케 1급전범의 외손자 아베총리는 민족의 영웅 안의사를 사형판결받은 사형수라 폄훼하였고 스가요시히데 관방장관은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하고 있다.반면에 그나마 양심적인 사민당 출신 무라야마 전 총리 , 자민당 출신 고노 전 장관두 사람은 20년 전 사민당·자민당·사키가케 3당 연립 정권의 핵심이었는 데 한 사람은 총리, 한 사람은 외무장관으로서 냉전 이후 일본 외교가 나아갈 길을 함께 만들었다. 소속 정당도, 이념도 달랐지만 일본이 저지른 과오를 사실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데는 인식이 일치했다.아베 정권의 군국주의화와 평화헌법개정시도로 동아시아 평화에 역행하는 행보에 대한 일본 사회 내부의 우려가 그만큼 깊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조선 침략 사상을 퍼트린 정한론의 선구자인 요시다쇼인을 가장 존경한다는 아베의 미친 발걸음이 동아시아를 넘어 전세계평화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실정이다.
*무라야마,고노담화란? 1995년 무라야마담화, 식민지배 사죄로 평가,1993년 고노담화, 위안부동원 강제성 사과
서독의 빌리브란테 총리(1913~1992)가 폴란드 유대인 학살 추모비 앞에서 처음 무릎 꿇은 것처럼 아베도 진정성있는 사죄와 배상으로 ‘경색된 한일관계 개선과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해서 일본패싱에서 벗어나길 기대해본다.남과북이 종전선언,평화협정체결하고 한몸이 되면 일본의 입지는 타국가로부터 손가락질받아 더 악화된 미국의 푸들로만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2월14일은 안의사 사형언도일,3월26일은 사형집행일이다.올해는 아니더라도 내년부터는 전국유일무이한 해동사처럼 유일무이한 추모식을 장흥군 주관으로 엄숙하게 거행해서 남북한반도를 넘어 평화를 염원하는 지구촌에 희망의 메세지를 전파함이 어떨런지 제안해 본다.
마지막으로 안중근의사님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소개하면서 마치고자 한다.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거라.
**일본 모리나가 제과가 여성들에게 초콜릿을 통한 사랑고백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여성이 초콜릿을 통해 좋아하는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서의 일본식 발렌타인데이가 정착되기 시작한 교묘한 상술일 뿐 이다.모리나가 제과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에게 전투식량을 대량으로 제공한 전력이 있는 '전범기업'으로, 1910년 설립돼 아이스크림, 과자류 등을 만들어왔다.3세기경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는 당시 결혼을 통해 병역 소집령을 기피하려는 젊은이들에게 금혼령을 내렸다. 이에 로마 카톨릭교회의 성 발렌타인이 황제의 결혼 금지령에 반대해 사랑하는 남녀를 교회로 불러 결혼을 시켰고 이 사실을 보고받은 황제는 발렌타인을 처형했다. 성 발렌타인이 순직한 날이 바로 서기 270년 2월14일이다. 日本전쟁범죄기업의 상술에 놀아나는 왜곡된 발렌타이데이,다시 한번 곱씹어 보고 싶은 2월14일이다.
부산면 꽃동네에서 반민특위 안명규
코레아 우라(Корея ура)!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우리말로 "대한민국 만세"라는 뜻이다.
하얼빈 역에 잠입하여 역전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순간 안 의사가 발사한 7.62mm 구경 FN 브라우닝 M-1900 권총탄 7발 중 3발은 이토에게 적중해서 이토를 사살하였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 팔꿈치에 1발,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다이지로 복부에 1발, 남만주 철도 이사인 다나카 세이타로 왼쪽 무릎에 1발을 쏘아 중상을 입히고 외친 말이다. 의거를 마친 안 의사는 현장에서 러시아 헌병들에게 체포됐다. 이후 일본 관헌에게 넘겨져 뤼순의 일본 감옥으로 옮겨졌다.
일본은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로 몰아가려 했다. 그러나 안중근은 대한의군<대장 이범윤> 중장으로서 일본에 맞선 독립 전쟁의 일환으로 이토를 처단한 것이니 자신을 전쟁 포로로 대우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일본이 겉으로는 동양 평화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침략자이며, 이토를 죽인 것은 진정한 동양 평화를 위해서였음을 논리정연하게 주장해 일본 재판부를 당황시켰다.. 다음해 2월 7일부터 14일까지 안 의사는 6번의 재판을 받는다.2월14일 일본법정은 안의사에게 사형을 언도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연한 논리로 법정투쟁을 전개한다.
*이등박문의 15가지 죄
첫째,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둘째, 1905년 11월 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든 죄 셋째. 1907년 정미7조약을 강제로 맺게 한 죄 넷째, 고종황제를 폐위시킨 죄 다섯째, 군대를 해산시킨 죄 여섯째,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죄 일곱째, 한국인의 권리를 박탈한 죄 여덟째, 한국의 교과서를 불태운 죄 아홉째, 한국인들을 신문에 기여하지 못하게 한 죄 열 번째, (제일은행) 은행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열한번째, 한국이 300만파운드의 빚을 지게 한 죄 열두번째,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 열세번째, 한국에 대한 일본의 보호정책을 호도한 죄 열네번째, 일본천황의 아버지인 고메이 천황을 죽인죄 열다섯번째, 일본과 세계를 속인 죄 등이다.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뤼순 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한편 친일매국노들은 1909년 10월 26일에 이토가 사망하자 대련에 이완용을 단장으로 사죄단을 파견하고, 한성에서 이토를 추도하는 모임과 안중근의사 규탄집회를 열었다.
대한제국 순종은 메이지 일왕에게 전보를 보내 위문하고 한국왕실정부대표이등박문조례단(韓國王室政府代表伊藤博文弔禮團)위문사절단 조직에 들어갔다. 순종은 시종원경 윤덕영을, 고종은 승녕부총관 조민희를, 내각은 총리대신 이완용을 위문사절대표로 지명했다. 이들과 함께 통감부 파견원과 한성부민회장 유길준 등이 함께 청나라의 대련으로 파견되었다.
이토의 장례는 11월 4일에 도쿄에서 국장으로 거행되었다. 장례 절차에 대한 공식 발표와 함께 순종은 안중근을 "오(吾)의 흉수"라고 지칭하면서 추도의 뜻을 전보로 보냈고, 곧바로 조문단을 구성해 장례식에 참여하도록 했다. 조례단 대표는 고종의 특사 박제빈, 순종의 칙사 민병석, 의민태자의 어머니인 순헌황귀비의 조문사 엄주익, 내각 대표 조중응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수행원들과 함께 10월 30일에 서울을 떠나 장례식에 참석한 뒤 11월 7일에 돌아왔다."이게나라냐"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망할수밖에 없는 나라였다.
110년 지난 지금도 기시노부스케 1급전범의 외손자 아베총리는 민족의 영웅 안의사를 사형판결받은 사형수라 폄훼하였고 스가요시히데 관방장관은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하고 있다.반면에 그나마 양심적인 사민당 출신 무라야마 전 총리 , 자민당 출신 고노 전 장관두 사람은 20년 전 사민당·자민당·사키가케 3당 연립 정권의 핵심이었는 데 한 사람은 총리, 한 사람은 외무장관으로서 냉전 이후 일본 외교가 나아갈 길을 함께 만들었다. 소속 정당도, 이념도 달랐지만 일본이 저지른 과오를 사실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데는 인식이 일치했다.아베 정권의 군국주의화와 평화헌법개정시도로 동아시아 평화에 역행하는 행보에 대한 일본 사회 내부의 우려가 그만큼 깊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조선 침략 사상을 퍼트린 정한론의 선구자인 요시다쇼인을 가장 존경한다는 아베의 미친 발걸음이 동아시아를 넘어 전세계평화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실정이다.
*무라야마,고노담화란? 1995년 무라야마담화, 식민지배 사죄로 평가,1993년 고노담화, 위안부동원 강제성 사과
서독의 빌리브란테 총리(1913~1992)가 폴란드 유대인 학살 추모비 앞에서 처음 무릎 꿇은 것처럼 아베도 진정성있는 사죄와 배상으로 ‘경색된 한일관계 개선과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해서 일본패싱에서 벗어나길 기대해본다.남과북이 종전선언,평화협정체결하고 한몸이 되면 일본의 입지는 타국가로부터 손가락질받아 더 악화된 미국의 푸들로만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2월14일은 안의사 사형언도일,3월26일은 사형집행일이다.올해는 아니더라도 내년부터는 전국유일무이한 해동사처럼 유일무이한 추모식을 장흥군 주관으로 엄숙하게 거행해서 남북한반도를 넘어 평화를 염원하는 지구촌에 희망의 메세지를 전파함이 어떨런지 제안해 본다.
마지막으로 안중근의사님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소개하면서 마치고자 한다.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거라.
**일본 모리나가 제과가 여성들에게 초콜릿을 통한 사랑고백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여성이 초콜릿을 통해 좋아하는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서의 일본식 발렌타인데이가 정착되기 시작한 교묘한 상술일 뿐 이다.모리나가 제과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에게 전투식량을 대량으로 제공한 전력이 있는 '전범기업'으로, 1910년 설립돼 아이스크림, 과자류 등을 만들어왔다.3세기경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는 당시 결혼을 통해 병역 소집령을 기피하려는 젊은이들에게 금혼령을 내렸다. 이에 로마 카톨릭교회의 성 발렌타인이 황제의 결혼 금지령에 반대해 사랑하는 남녀를 교회로 불러 결혼을 시켰고 이 사실을 보고받은 황제는 발렌타인을 처형했다. 성 발렌타인이 순직한 날이 바로 서기 270년 2월14일이다. 日本전쟁범죄기업의 상술에 놀아나는 왜곡된 발렌타이데이,다시 한번 곱씹어 보고 싶은 2월14일이다.
부산면 꽃동네에서 반민특위 안명규